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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여신을 찾아서 / 김신명숙


그들은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p175-

 책을 읽기에 앞서 행하는 나만의 의례(?)가 있다. 
아무 페이지나 읽으며 종이 냄새를 맡고 책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다 마주친 문장, 
'그들은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별안간 강렬한 감정이 올라와 울고 말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이제야 인정받았어....고맙다. 아무도 미워하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인정받은 주체는 누구이며, 누구를 미워하지 말라는 것일까... 

책은 저자가 크레타 여신 순례를 다녀온 1부와, 
한국에서 찾은 여신 이야기가 담긴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사실 나는 2부에 큰 관심이 있었지만
마시멜로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욕구를 지.연.시.키.며 1부부터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다. 

1부는 내가 좋아하는 부도지의 마고성처럼 평화롭고 조화로운 여신의 나라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들어서 머리로는 알지만 
진짜 정말 어떤 세상일지 상상도 안가는 평화로운 세상,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그런 세상이길 바라본다.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 자식을 먹어 치우는 아버지, 
장성한 후 아버지의 권력을 탈취하는 아들, 
남신이 지배하게 된 신화의 세계는 
미노아 여신문명과 너무나 다른 권력투쟁의 시대를 증언한다. 
-p128-


크레타 순례에는 동굴이 많이 나온다.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여신의 자궁, 생명의 발현지. 

모든 것은  그녀로부터 나오고, 그녀에게로 돌아간다. - 나선춤 , 스타호크. p114-

어둠을 벗어난 밝음에서는 모든 것이 생장하고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노화 즉 죽음을 향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밝음, 즉 양의 기운은 사방으로 뻗치는 성질이 있다.
뻗쳐 나가며 확장하다 결국은 응축되어 궁극의 음, 
즉 어둠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다시 어둠에 머물며 생명을 기다린다.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여신의 동굴에 대해 읽으며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우물이 생각났다.
무의식, 변신, 변화 , 부활의 메타포, 우물과 동굴. 

자궁에 다시 들어가는 행위는 그곳에서 변환을 거쳐 재탄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어둠을 통할 때 가능하니까요.
우리 문화는 흑백논리에 의해 빛과 어둠을 대비시키고 빛만 예찬합니다. 
어둠을 죄악시하거나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요. 
그와 동시에 남자는 빛, 여자는 어둠과 연관돼 있어요. 
하지만 자궁과 땅속이 그러하듯 생명은 어둠 속에서 생겨납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어둡고 찬 흙 속에 있어야 하듯 
치유나 변환, 새로운 삶을 찾는다면 자기의 중심에 어둠을 품어야만 하지요. 
-p136-

우리가 신비의 길을 걸을 때, 
우리가 어둠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시작한 여행에 불필요한 모든 것,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버릴 것을 요구받는다. 
오직 발가벗었을 때 우리는 새로 태어날 수 있다. 
버림의 상징으로 우리 각자는 어둠 속으로 변환의 자궁으로 돌을 던질 것이다. 
-p141-

죽음은 무가 아니야. 변환의 과정일 뿐이야.
-p149-

나는 가이아, 마고, 설문대할망 등 어머니 여신의 이야기가 좋다 . 

크로노스와 같은 태초의 신,거신족 마고할미.


마고할미는 한국 신화의 근원이자 첫머리다. 
그녀는 태초의 시간에 뿌리를 둔 창조여신으로 그리스 가이아 여신에 비견할 수 있다. 
-p365-


나는 여성의 문제와 미래에 관심이 많고 
여신이야기를 사랑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에게 젠더가 적용될까? 
젠더를 적용해야할까? 
또 다른 의인화와 역할 놀이는 아닐까?
남신의 폭력성과 권력욕이 여신을 처참히 몰락 시켰지만 
이제 여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니 남신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걸까?

그녀는 편을 들지 않아요. 다만 우주의 균형을 유지할 뿐이죠.
-영화 아바타 중에서-

나는 여신이라는 의미가
생명력, 모성애 등의 능력을 포함한 여성성이 설명하는 것이지 
‘여성'이라는 젠더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석심리학에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남성 속의 여성, 여성 속의 남성, 즉 자신의 성에 반대되는 이성의 속성을  뜻하는 용어다.
누구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가지고 있지만 
오랜 관습과 사회적 역할 놀이가 이를 억압하고, 강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저자는 ‘여신'이라는 조화와 평화의 메타포를 통해 
각자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인정하고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풀 한 포기가,
나무 한 그루가, 
흙 한 줌이,
 저 하늘이, 
이 지구가 
어머니 신성으로 보듬어 주고 있으니
외로워 말고 씩씩 하게,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도 미워하지 말라'는 마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이 책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